작가노트: 밤에도 그것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회화 자체 대한 메타적 접근과 한국화 재료의 개념적 확장은 나에게 있어 끊임없는 아방가르드를 생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물음이자 작업의 원천이다.

작가노트 中

불이 다 꺼진 새벽 시간, 옥상에 올라 뒷산의 풍경을 바라보곤 한다. 어둠 속 어렴풋이 드러나는 산의 풍경을 지긋이 바라보면 숨어 있던 시각의 예민함이 살아나면서 낮에는 할 수 없는 방식의 교감이 시작된다. 그리고 나와 산 사이의 가시광선이 사라진 공간으로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서술할 수 없는 무한한 서사가 생성된다.

2020년 사회적 격리로 인한 반작용으로 자연에 대한 향수를 느끼면서 이를 회화로 소환하기 시작했다. 한국화에서 그리는 유토피아는 대부분 자연을 담고 있다. 한국화 적 미감이 체화되어 있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흑백의 아크릴 물감에 헤비바디 미디움을 섞어 마티에르를 내어 그려진 대자연의 그림은 일종의 신체를 가지게 되고 현실의 오브젝트로 내 앞에 나타난다. 정지된 이미지가 담긴 이 평면의 물체 위에 묽은 카본블랙 물감을 도포한다. 어둠이 요철 사이사이에 흘러 들어가게 되면 그림은 다시금 시간이 흐르게 되고 나와 같은 위상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자연은 새로운 몸을 가진 접촉 가능태가 되어 내 앞에 ‘존재’하게 된다.

이것은 “그림 연구”의 2부로, 직접 대면하고 싶은 것을 그림으로 소환하여 그것과 함께한 시간을 기록하는 그림연구 1부 “소환프로젝트”의 연장이다. 그리고 이것은 먹, 배접, 공기 원근법, 물의 시간성 등 한국화의 개념을 확장, 변형한 새로운 소환술이다. 이를 통해 현 시점에서 생각하는 ‘그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나름의 답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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