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말하는 돌 (혹은 그림) | The Stone that Brushes the Sun …



《스스로 말하는 돌 (혹은 그림)》

장소: 예술공간 의식주
(@the_necessaries)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홍연길 80)
일시: 2023년 12월 9일 – 30일
운영시간: 13:30 – 18:30 (월, 화 휴무)

주최: 김현호 (@hhkimstudio)
주관: 김현호, 예술공간 의식주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korea)

사진: 조준용|영상: 최윤석|디자인: CMYK|서문: 박소호|평문: 콘노 유키
installation view
Artist Talk Video
<답사 전경> 사진: 박소호
# 만질 수 있는 시간

한반도에는 약 4만 기의 고인돌 유적이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우리가 살아온 땅, 아주 가까운 거리에 과거로부터 전해온 시각 언어가 담긴 유물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 초반에 자주 등장하는 기념비인 고인돌은 누군가를 애도하는 무덤으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 과거의 풍토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전언으로 작동된다. 올해부터 작가 현호는 이 무수히 많은 과거의 잔상을 소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전국에 있는 고인돌 유적의 위치와 형태를 사전조사한 후 답사여행을 떠났다. 여러 장소에서 수집된 고인돌의 형태와 표면은 전시공간에서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오브제로 기능하게 되었다. 전시공간에는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놓여있다. 그들은 안개보다 짙고, 밤보다 푸른 현(玄) 색에 덮여있다. 이 현이라고 하는 어둠, 검푸른 색은 관객에게 시각언어의 촉각화와 청각화를 체험하게 한다. 일순간 마주치고 스치는 기호언어와 다르게 일정한 시간을 두고 바라보아야 경험할 수 있는 질감과 울림은 시간을 만질 수 있게 하고 장면을 들을 수 있게 한다.

# 스스로 말하는

작가 현호는 무언가를 소환할 수 있는 방법과 소환될 수 있는 대상에 주목해 왔다. 그리고 이번 작업에서는 빛이 현저하게 줄어든 어둠의 시공간에 몰입하면서 우리에게서 멀어진 원시적 감각을 소환하게 한다. 이 공간은 우리의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간에 약간의 틈과 차이를 만들어낸다. 칠흑 같은 어둠도 결국 적응의 시간이 지난 후에 서서히 그 윤곽이 드러나는 것처럼 작가에게 있어 검은색의 평면과 도포는 관객에게 던지는 시차의 터널이다. 관객은 전시공간에서 이 낯선 어둠과 마주해야 한다. 우리 등 뒤에 자리하고 있는 두려움과 닮은 이 검은 평면은 점차 멀어지고 있는 손과 손의 맞닿음, 입과 귀의 밀착을 다시금 연결하게 한다. 없어지고 삭제되는 무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새겨놓은 서사의 유전자가 자리하고 만들어지는 무한한 공간으로 전환하게 한다. 작가는 스스로 말하는 돌 자체를 발견하는 과정보다 잃어버린 감각과 봉인된 이야기가 담긴 무한한 공간을 복원하고 확장하는 일에 더욱 밀도를 가하고 있다. 가시광선에 보이는 이미지로는 담기지 않는 시각과 촉각, 시각과 청각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내어 너와 내가 닿을 수 있는 최적의 문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 소환사

작가는 이번 전시의 소재로 고인돌이라는 일종의 유적을 선택했다. 오브제가 유적이 되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과거에서 흘러온 시간, 그리고 특정한 장소, 마지막으로 기록할 수 있는 가치,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 유적 중에서 고인돌은 가장 오래된 장소와 시간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자연물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기에 셀 수 없이 오래된 어제의 이야기와 환경까지 자연스레 품고 있어 보존가치가 있는 유적이 될 수 있었다. 작가 현호는 이 고인돌이 지닌 언어에 주목한다. 베일에 싸인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를 넘어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과 시간이 모여 만든 서사의 껍질과 하나의 낱말로부터 비롯된 단단한 두께의 문장을 떠낸다. 이것은 일종의 ‘탁본 뜨기’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기록을 위한 탁본의 일반적인 의미와 역할이 아니라, 수만 광년 떨어진 별빛을 발굴하는 일과같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 발견할 수 있는 우리 본연의 감각을 떠내는 의미에서의 탁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기라는 재현 방식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 결과의 표면을 통해 닿을 수 없는 시간의 밀도에 질문해 온 작가 김현호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멈추고 응시하는 새로운 눈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마침내 우리는 이 눈을 통해 서술과 묘사가 잠식하고 있는 이 문명에서 은유와 감탄을 생산하는 해방의 유적과 만날 수 있게 된다.

  • 박소호 예술공간 의식주 디렉터

Preface

Hyunho Kim’s Solo Exhibition
: The Stone that Brushes the Sun …

Soho Park
Director of The Necessaries

# Time That is Tangible
It is said that there are about 40,000 dolmen ruins on the Korean Peninsula. There are artifacts that hold visual language in close proximity in the land where we have lived for a long time. We often read about the dolmens, or monuments, at the beginning of history textbooks, and they go beyond functioning as graves to mourn and function as a message that gives us a glimpse into the culture and life of the past. Hyunho Kim started summoning myriads of remnants this year. After preliminary research on the locations and forms of dolmens across the country, he set out on an exploratory trip to the sites. The forms and surfaces collected are transformed by the artist into new objects and dolmens of various shapes are on display at the exhibition space. They are covered in darkness that is darker than fog and bluer than night. The darkness invites viewers to experience visual language that has become touchable and audible. Unlike symbolic language that is instant, the textures and sounds that can only be sensed after looking into them for a while enable us to feel the time and hear the scene.

# Self-Speaking
Kim has been focusing on what can be summoned and how. His new works are in a darkened space and time, and they create a field for viewers to summon primitive senses that are distanced. This space creates gaps and differences in the time when we take in visual information. Just as pitch black eventually reveals its contours as our eyes adapt to it, the artist’s black planes and applications of darkness are tunnels of parallax that he suggests to the viewer. The viewer must face this unfamiliar darkness. This black plane, which resembles the fear that lurks behind our back, reconnects our hands and mouth and ears. It is an infinite space in which the genes of our own narratives are embedded and created, not a space of nothingness where things disappear and get deleted. The artist is more engaged with restoring and further expanding infinity that carries lost senses and sealed stories than with the process of discovering the stones itself. By locating where sight and touch or sight and sound intersect, the artist creates the optimal sentence that you and I can reach.

#Summoner
Kim chose dolmens, an artifact, as a subject matter for this solo show. For an object to become a relic, three requirements should be met. It has to be a piece from the past, a specific place, and it has to hold a value or a story to be recorded. Of all the relics, dolmens come from the most ancient place and time. Since they are still in their original, natural form, they innately bequeath the environment and innumerable stories, which makes them a relic worthy of preservation. Meanwhile, the artist pays attention to the language of these dolmens. He goes beyond the stories of the distant past and reflects the time when we of today did not exist, the shell of narratives that are formed by time and sentences of solid thickness that originated from a single word. This can be regarded as rubbing or making a copy. However, it is not a tablet in the usual sense where it is used to record things. Rather, it is a tablet in the sense that, like when we excavate starlight from thousands of light years away, we discover our original sense by tracing back in time. While Kim’s past works researched the approaches of representation and questioned the density of time that is not reachable by the given surface, his new works suggest that we pause and gaze. This way, in this day when narration and description is predominant, we can experience metaphors and admiration through the relics of lib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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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Images
Critic Text written by Yuki Konno : 한국어 / Engish

《Full or Empty》

Solo Exhibition
Full or Empty
2023. 3. 16. – 4. 9.
ROY GALLERY

로이갤러리에서 열리는 김현호 작가의 개인전 《Full or Empty》는 작가의 프로젝트인 한국화의 경계를 확장하는 ‘그림연구’중 최근 신작을 위주로 선보이는 전시이다. 작가는 카메라로 담기 어려운 검은 그림을 통해 신체적으로 경험해야 비로소 보이게 되는 그림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만물의 색을 상징하는 현(玄)색 즉 먹색의 의미와 마띠에르 표현이 가능한 아크릴 물감의 두께를 살려 회화의 평면성보다 촉각성을 강조해 마치 부조와 같은 회화를 제시한다. 관객은 바로 보이지 않는 검은 그림을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지만 가까울수록 대상을 인지하기 어려워 다시 거리를 두고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이처럼 몸을 앞, 뒤, 옆으로 옮겨가며 시간을 두고 작품을 경험하게 하는 감상법은 한 시점에서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는 평면 회화를 보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작가가 그린 검은 자연 풍경은 자연을 방 안으로 들여와 즐기기 위해 산수를 그리고 벽에 걸어 감상하는 ‘와유’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의 그림은 가득 ‘채운’ 검은 그림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비어있는‘ 풍경을 통해 감상자가 작품 속으로 개입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특징이다. 명확하게 그려진 또는 표현된 대상을 관객에게 전달하며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닌 전하고 싶은 말을 모두 꺼내었다 도로 덮어두고 마주한 상대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켜진 실내등을 껐을 때, 갑자기 빛이 사라진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 슬며시 주위가 인식되기 시작한다. 빛이 사라진 어둠 속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텅 비어있지만, 우리의 눈이 어둠에 서서히 익숙해지면서 주변의 하나, 하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큰 실루엣에서부터 점차 세밀하게 대상이 보이는 순간 우리는 보이지 않음의 공포에서 인식할 수 있음에서 오는 안도감에 도달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김현호의 작품은 한순간에 인지하기 어렵다. 흰색과 검은색으로 그려진 선명한 자연이 그을음(carbon black)으로 뒤덮이며 캔버스에 세밀히 채워진 모든 것을 다시 덮고 비우는 단계를 거친다. 작가가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이 계속해서 캔버스 위를 채우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채우고 비우는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채우고 비우는 모든 과정이 순환하면서 외딴섬, 고요한 바다, 마주 선 폭포와 산, 그리고 땅의 주름까지 이어진다. 작품을 바라보는 이는 작가가 건네는 와유의 시간 속에서 채우고 비움의 반복을 통해 보지 못했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가능성을 찾게 된다.

글: 로이갤러리

밤에도 그것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Solo Exhibition
《밤에도 그것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Night Holding Space Even at Night
2022. 5. 27. – 6. 19.
INYOUNG GALLERY
Funded by ARKO

“이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2년도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 사업을 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대지를 담은 궤: vision> 182×228cm_캔버스에 아크릴_2022

어둠 안에서 열리는 눈

홍예지 미술비평가

산등성이를 타고 밤이 깔린다. 수백 번의 붓질이 지나간다. 마른 짐승의 등골처럼 움푹 패인 곳이 있는가 하면, 우둘투둘하게 솟아난 곳도 있다. 튀어나온 자리마다 희미한 은빛이 감돈다. 저만치 위로 폭포 소리가 들린다. 솨아아- 떨어지는 물줄기는 빛줄기가 되어 어둠의 베일을 들춘다. 수심(水深)은 마음의 깊이와 같고, 수천 개의 물방울이 측정할 길 없는 심연으로 스며든다.

김현호의 산수(山水)는 견고한 표면 너머로 “심리적인 배면(背面)”[1] 을 간직하고 있다. 겹겹이 도포한 카본 블랙 층 아래에는 오직 흑과 백으로 구성된 자연이 존재한다. 눈을 현혹하는 색들을 미련없이 걷어 내면서 맞아들인 세계다. 비움으로써 고요해진 화면은 화려함 대신 깊이를 얻었다. 그 깊이, 미세한 명암의 차이에 따라 무수한 사이-공간이 열린다. 관객은 저마다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 사원(寺院)에 불이 들어온다.

이 명상적인 그림들은 낯선 세계를 열어 보이면서 동시에 거두어 들인다. 언뜻 나타난 세계는 백일하에 드러난 자연이 아니다. 숨 멎는 암흑 속에서 은밀히 빛나는 자연이다. H. 롬바흐의 말마따나, 빛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낮의 빛보다 아침의 빛을, 아침의 빛보다 밤의 빛을 높이 평가한다. “밤이 낮보다 더 근원적이지 않은가? 빛이 빛일 수 있기 위해서는 결국 보다 광대한 어둠으로부터 빛나 오르는 것이어야만 하지 않는가? (…) 존재는 모든 것에 선행하는 무에 대항하면서 자신을 두드러지게 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2)  김현호의 화폭에서 산과 폭포는 어둠으로부터 “융기”한다. 이는 곧 “부활”이며,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것, 타자인 것, 사라지는 도중에 있는 것이 몸 자체 안에서, 몸으로서 돌출하는 것이다.” 3)

그림 속 자연은 접촉을 유도하면서 밀어낸다. “나를 만지지 마라.” 헤르메스적 시인의 눈을 가진 관객은 “이해(verstehen)”하지 않는다. “그는 본다.”4)  이 무지막지한 어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미지(未知)의 영역을 그저 받아들인다. 이 역설은 타자와 나, 자연과 인간 사이에 신성한 거리를 설정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어떤 물러남, 거리, 변별 그리고 ‘측정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난다.5)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 밤이 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빛보다 어둠이 근원적이라는 것. 이 자명한 사실을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서구의 몇몇 사상가들이 주장했던 것과 달리, 자연의 존재 여부는 나의 인식에 달려 있지 않다. 자연은 온전히 거기에 실재한다. 내가 바라보거나 말거나, ‘언제나 그곳에 있다.’ 자연의 절대적인 출현 앞에서 우리는 말문이 막힌다. 이해를 넘어서는 지점을 목도한다. 그럼에도 두렵지 않다. 우리의 몸을 천천히 감싸는 어둠에서 빛다운 빛과 조우할 수 있기에. 그렇다면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보는 게 문제가 아니다. 더 나아가 어둠에도 불구하고 보는 게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둠 안에서 눈을 여는 것이다.”6) 

[1] 르네 위그, 『보이는 것과의 대화』, 곽광수 옮김, 열화당, 2017, p.117.

[2] H. 롬바흐,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 전동진 옮김, 서광사, 2001, pp.38-39.

[3] 장-뤽 낭시, 『나를 만지지 마라』, 이만형∙정과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 p.33.

[4] H. 롬바흐, op. cit., p.35.

[5] 장-뤽 낭시, op. cit., p.29.

[6] ibid., p.76.

작품 이미지 링크

Preface

Kim Hyunho’s Solo Exhibition – Night Holding Space Even at Night

Eyes That Open Up in the Darkness

Yeji Hong / Art critic

Translated by O Woomi Chung

The night falls on the ridges of mountains. Hundreds of brush strokes carve the valleys that resemble the backbones of a bony beast and erect crests that protrude. Faint light quietly shimmers in every bumpy spot. The sound of a waterfall comes from above. The gush of water becomes a beam of light and unveils darkness. The depth of it is that of one’s heart, and thousands of droplets seep into the boundless abyss.

Hyunho Kim’s landscape paintings have a “psychological context”[i] beyond the solid surface. Underneath the layers of carbon black lies the black and white nature, which forsaking seductive colors gracefully let in. The canvas made silent by emptying attains depth instead of splendor. Countless in-between spaces are then open, depending on the depth and subtle brightness. Each audience follows their heart and the temple of their heart is lit up.

These meditative paintings open up a foreign world and take it in at the same time. The glimpse of it hints not at the self-evident nature, but the one that clandestinely glistens in the breathless darkness. As Heinrich Rombach put it, those who are sensitive to light value the light of morning over that of day and the light of night over that of morning. “Isn’t night more fundamental than day? For light to be light, doesn’t it ultimately have to be radiating from ample darkness? (…) Don’t beings exist by resisting nothingness(Nichts) that precedes everything and by surfacing?”[ii] In Kim’s works, mountains and waterfalls are viewed as “uprising(surrection)” from darkness. It is “resurrection”, and “the sudden appearance of the unavailable, of the other and of the one disappearing in the body itself and as the body.”[iii]

Nature in the paintings induces push and pull. “Touch me not.” Viewers with the eyes of a hermetic(hermetisch) poet do not “understand(verstehen)” but “see(sehen).”[iv] They simply accept this wild darkness and the unknown realm of which the depth cannot be fathomed. This paradox is related to the issue of establishing the sacred distance between the other and I and between nature and man, and it is present “wherever there is withdrawal, distance, distinction, and the incommensurable”.[v] Can we accept these self-evident facts more naturally — that

there is a world that is unidentified, that night cannot not come, that darkness is more fundamental than light? Contrary to what some Western thinkers have stated, the existence of nature does not depend on our perception — nature is wholly present. Whether or not one sees it, it is ‘always there.’ Before the absolute emergence of nature, we remain speechless.

Viewers see a point that lies beyond understanding, but they are not afraid since they are to come across true light in the dark that will slowly blanket their body. Then, “it is not a question here of seeing in the darkness, that is, in spite of it. It is a question of opening ones’ eyes in the darkness.”[vi]


[i] René Huyghe, Ideas and Images in World Art: Dialogue with the Visible, trans. Gwangsu Gwak, Paju: Youlhwadang, 2017, p.117.

[ii] Heinrich Rombach, The Apollonian World and the Hermetic World, trans. Dongjin Jeon, Paju: Seokwangsa, 2001, pp.38-39. (Translator’s note: The quoted text is a translation of the Korean edition.)

[iii] Jean-Luc Nancy, Noli me tangere: On the Raising of the Body, trans. Sarah Clift, Pascale-Anne Brault, and Michael Naas,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08, p.15.

[iv] Heinrich Rombach, op. cit., p.35.

[v] Jean-Luc Nancy, op. cit., p. 14.

[vi] ibid., p. 42.

work image link

The Summoning Project / 소환프로젝트展(2017)

The Summoning Project
2017.2.17. – 3.4.
Place Mak(Macksa)
Seoul
소환프로젝트展

소환 프로젝트는 참여자들의 소중한 대상을 그려주면서 시작된다. 참여자들에게서 건네받은 사진과 어떤 방식으로 함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작가는 그에 맞게 제작하여 준다. 소중한 대상이 그려진 가방, 안경, 신발, 이불, 쿠션을 받은 참가자들은 소중한 대상의 기억을 영상으로 찍어 작가에게 보내준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편집하여 영상작업으로 만든다. 그 영상 안에서 참여자들은 화자가 되어 소중한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환이라는 단어에는 어떤 대상을 지정된 곳에 나타나도록 요구하는 명령적 뉘앙스와 현재에 없는 것을 나타나게 하는 주술적 뉘앙스가 함께 담겨 있다. 그렇기에 작가에게는 닮게 그리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즉, 소중한 대상의 재현이 그 대상의 소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참여자와 상의하여 좀 더 닮게 그리기 위해 여러 차례 수정의 과정을 거쳐 작업을 완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재미있는 점은 순간을 기록하는 객관적 정보로 이용되는 사진이 아닌 참여자들의 기억 속 모습과 닮게 그려야 하는 점과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요구는 소환을 위한 마법사들의 주문처럼 작가에게 주문됐다.

작가의 초기 작업은 평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림이 그려진 바탕의 물성을 이용해 부분적으로 변형을 줌으로서 평면성을 해체하는 시도를 해왔다. 이는 소환 프로젝트에서 안을 수 있고, 업을 수 있는 물성으로 발전되었다. 이로써 초상은 평면의 바라보는 대상이 아닌 껴안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로 대체되고, 참여자들의 기억으로 그들은 현재 시점에서 재현되어 소환되었다.

카메라의 발명 이후, 회화는 재현의 기능을 잃고 회화 자체의 순수성을 추구하여왔다. 기술의 발달로 가상이 현실처럼 느껴지는 오늘날 소환 프로젝트는 재현에 관해서 다시금 우리에게 묻는다.

■ 구주희 (플레이스 막)

The Summoning Spell
single channel video
17m 56s
2017
소환의 주문

Sponsor: SFAC(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Exhibited Works – Kwon Sunhee, Seo Injoo, Alice, Yoon Soyoun, Yoon Chulho

후원: 서울문화재단

전시된 소환프로젝트 – 권선희, 나딘, 서인주, 앨리스, 윤소연, 윤철호

The Summoning Project: meetable parallel / 소환프로젝트: 닿을 수 있는 평행 (2016)

exhibition poster
The Summoning Project: meetable parallel
Dotline TV
Seoul
전시 포스터
소환프로젝트-닿을 수 있는 평행展

“The Summoning Project: meetable parallel” is the exhibition that shows results of village residency program of Dotline TV. The works are mainly composed with video and photographs which collaborated with people who live in Hong-je village as “The Summoning Project”

닷라인TV 레지던시 프로그램 결과 보고전. 홍제동 마을 주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참여자를 찾고 그들과 함께한 소환프로젝트를 영상, 사진 형식으로 결과를 발표하였다.

주관적 체험과 현상학을 바탕으로 인간 정신을 분석하고 체계화한 융(Carl Gustav Jung)은 인간의 성격은 과거의 사건들 뿐만 아니라 미래에 원하는 어떤 것의 열망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이와 비교되는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인간의 성격은 주로 과거의 사건이나 과정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그는 히스토리를 통해 진화되고 변화하는 인간 정신의 구조와 운용 패턴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번 소환 프로젝트는 우리 기억이 소환되는 지점으로부터 출발하여 기억의 원형을 복구하고, 개인의 경험과 욕망이 발현된 ‘조각된 기억’을 구현하는 층위에서 다루어진다.

김현호의 소환 프로젝트는 지역주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참여자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기억과 기대를 실체화-만질 수 있는 실체, 즉 소환 대상이 그려진 가방, 벽화, 신발로 구현-하여, 무형의 욕망을 참여자의 현실 속에 대면시켜 일상의 여행을 기록하고, 숨어있던 열망을 표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들이 가방이나 벽화와 함께 기록했던 영상, 사진들은 작가에게 재편되어 새로운 관람객들을 위한 목소리로 구성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프로젝트 안에서 참여자는 수동적 관람자도 능동적 향유자도 아닌, 작가와의 ‘협업자’이고 소환물과 기록물 혹은 정신을 교환하는 긴밀한 ‘교환자’ 들이다. 참여자 각자 삶의 균열이 소환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 내적 통합을 이루고, 작가에겐 삶의 영역을 이해, 확장하는 데에 한걸음 전진했다면, 그들의 교환가치는 측정불가능의 자기실현으로 정의될 수 있다. 작가는 프로젝트의 궤를 관통하는 장치를 설정하고, 참여자와 교류하며 소환물-그리는 행위가 도구화 된-을 개인 삶의 지형 속에 복구한다. 이 과정에서 조응하는 사유의 결함과 왜곡된 기억 또한 교환의 메카니즘 안에서 해결되고 수정된다. 우리가 말하는 ‘미술’은 이제 더 이상 재료와 공간, 매체의 유형화 프레임에 갇혀 있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추함, 정치적 표현, 관객과의 소통과 커뮤니티 등 다양한 담론과 연계되며, 변형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틀을 제시하고 전복한다. 우리가 안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과민 반응, ‘새로운 표현 언어’에 대한 히스테리를 해결하고 개인(혹은 사회)의 이야기를 문맥화하는 일에 이런 협업의 경험치들이 우리 미술의 자산화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기성의 미술이 ‘미술 작품’의 원작자를 확인하고, ‘매체’의 위계를 정하면서 미술사 안에서의 포지션을 확정하는 것이라면, 소환 프로젝트는 이 모든 운용 방식을 사실상 해체한다. 원작자는 참여자인가! 작가인가! 그림(소환물)의 주인은 작가인가! 참여자인가! 재현된 기억의 주인은 작가인가! 참여자인가! 이 모든 물음을 제시하고 새로운 담론을 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이 전시 안에서 발굴된 최고의 가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닿을 수 없었던 평행선이 오류의 찰나를 만들어, 평행의 두 줄을 조우하게 하는 시간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 문예진 (서울시마을예술창작소 닷라인TV)

The Summoning Project: meetable parallel
participants talk
소환프로젝트: 닿을 수 있는 평행展
참여자들과의 대화

host: Dotline TV / planning: D-Lap / sponsor: Artmasulso_Seoul Metropolitan Government_Seoul Community Support Center

work participants: Kwon Sunhee, Kim, Seo Injoo, and Seo Woo

주최: 서울시 마을예술창작소 닷라인TV / 기획: D-Lab (닷라인 예술콘텐츠 연구소) / 후원: 서울시 마을예술창작소_서울시_서울시 마을공동체

작품 참여자: 권선희, 김OO, 서인주, 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