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Exhibition Full or Empty 2023. 3. 16. – 4. 9. ROY GALLERY
로이갤러리에서 열리는 김현호 작가의 개인전 《Full or Empty》는 작가의 프로젝트인 한국화의 경계를 확장하는 ‘그림연구’중 최근 신작을 위주로 선보이는 전시이다. 작가는 카메라로 담기 어려운 검은 그림을 통해 신체적으로 경험해야 비로소 보이게 되는 그림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만물의 색을 상징하는 현(玄)색 즉 먹색의 의미와 마띠에르 표현이 가능한 아크릴 물감의 두께를 살려 회화의 평면성보다 촉각성을 강조해 마치 부조와 같은 회화를 제시한다. 관객은 바로 보이지 않는 검은 그림을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지만 가까울수록 대상을 인지하기 어려워 다시 거리를 두고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이처럼 몸을 앞, 뒤, 옆으로 옮겨가며 시간을 두고 작품을 경험하게 하는 감상법은 한 시점에서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는 평면 회화를 보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작가가 그린 검은 자연 풍경은 자연을 방 안으로 들여와 즐기기 위해 산수를 그리고 벽에 걸어 감상하는 ‘와유’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의 그림은 가득 ‘채운’ 검은 그림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비어있는‘ 풍경을 통해 감상자가 작품 속으로 개입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특징이다. 명확하게 그려진 또는 표현된 대상을 관객에게 전달하며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닌 전하고 싶은 말을 모두 꺼내었다 도로 덮어두고 마주한 상대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켜진 실내등을 껐을 때, 갑자기 빛이 사라진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 슬며시 주위가 인식되기 시작한다. 빛이 사라진 어둠 속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텅 비어있지만, 우리의 눈이 어둠에 서서히 익숙해지면서 주변의 하나, 하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큰 실루엣에서부터 점차 세밀하게 대상이 보이는 순간 우리는 보이지 않음의 공포에서 인식할 수 있음에서 오는 안도감에 도달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김현호의 작품은 한순간에 인지하기 어렵다. 흰색과 검은색으로 그려진 선명한 자연이 그을음(carbon black)으로 뒤덮이며 캔버스에 세밀히 채워진 모든 것을 다시 덮고 비우는 단계를 거친다. 작가가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이 계속해서 캔버스 위를 채우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채우고 비우는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채우고 비우는 모든 과정이 순환하면서 외딴섬, 고요한 바다, 마주 선 폭포와 산, 그리고 땅의 주름까지 이어진다. 작품을 바라보는 이는 작가가 건네는 와유의 시간 속에서 채우고 비움의 반복을 통해 보지 못했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가능성을 찾게 된다.
Solo Exhibition 《밤에도 그것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Night Holding Space Even at Night 2022. 5. 27. – 6. 19. INYOUNG GALLERY Funded by ARKO
“이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2년도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 사업을 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대지를 담은 궤: vision> 182×228cm_캔버스에 아크릴_2022
어둠 안에서 열리는 눈
홍예지 미술비평가
산등성이를 타고 밤이 깔린다. 수백 번의 붓질이 지나간다. 마른 짐승의 등골처럼 움푹 패인 곳이 있는가 하면, 우둘투둘하게 솟아난 곳도 있다. 튀어나온 자리마다 희미한 은빛이 감돈다. 저만치 위로 폭포 소리가 들린다. 솨아아- 떨어지는 물줄기는 빛줄기가 되어 어둠의 베일을 들춘다. 수심(水深)은 마음의 깊이와 같고, 수천 개의 물방울이 측정할 길 없는 심연으로 스며든다.
김현호의 산수(山水)는 견고한 표면 너머로 “심리적인 배면(背面)”[1] 을 간직하고 있다. 겹겹이 도포한 카본 블랙 층 아래에는 오직 흑과 백으로 구성된 자연이 존재한다. 눈을 현혹하는 색들을 미련없이 걷어 내면서 맞아들인 세계다. 비움으로써 고요해진 화면은 화려함 대신 깊이를 얻었다. 그 깊이, 미세한 명암의 차이에 따라 무수한 사이-공간이 열린다. 관객은 저마다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 사원(寺院)에 불이 들어온다.
이 명상적인 그림들은 낯선 세계를 열어 보이면서 동시에 거두어 들인다. 언뜻 나타난 세계는 백일하에 드러난 자연이 아니다. 숨 멎는 암흑 속에서 은밀히 빛나는 자연이다. H. 롬바흐의 말마따나, 빛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낮의 빛보다 아침의 빛을, 아침의 빛보다 밤의 빛을 높이 평가한다. “밤이 낮보다 더 근원적이지 않은가? 빛이 빛일 수 있기 위해서는 결국 보다 광대한 어둠으로부터 빛나 오르는 것이어야만 하지 않는가? (…) 존재는 모든 것에 선행하는 무에 대항하면서 자신을 두드러지게 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2) 김현호의 화폭에서 산과 폭포는 어둠으로부터 “융기”한다. 이는 곧 “부활”이며,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것, 타자인 것, 사라지는 도중에 있는 것이 몸 자체 안에서, 몸으로서 돌출하는 것이다.” 3)
그림 속 자연은 접촉을 유도하면서 밀어낸다. “나를 만지지 마라.” 헤르메스적 시인의 눈을 가진 관객은 “이해(verstehen)”하지 않는다. “그는 본다.”4) 이 무지막지한 어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미지(未知)의 영역을 그저 받아들인다. 이 역설은 타자와 나, 자연과 인간 사이에 신성한 거리를 설정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어떤 물러남, 거리, 변별 그리고 ‘측정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난다.5)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 밤이 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빛보다 어둠이 근원적이라는 것. 이 자명한 사실을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서구의 몇몇 사상가들이 주장했던 것과 달리, 자연의 존재 여부는 나의 인식에 달려 있지 않다. 자연은 온전히 거기에 실재한다. 내가 바라보거나 말거나, ‘언제나 그곳에 있다.’ 자연의 절대적인 출현 앞에서 우리는 말문이 막힌다. 이해를 넘어서는 지점을 목도한다. 그럼에도 두렵지 않다. 우리의 몸을 천천히 감싸는 어둠에서 빛다운 빛과 조우할 수 있기에. 그렇다면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보는 게 문제가 아니다. 더 나아가 어둠에도 불구하고 보는 게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둠 안에서 눈을 여는 것이다.”6)ⓒ
Kim Hyunho’s Solo Exhibition – Night Holding Space Even at Night
Eyes That Open Up in the Darkness
Yeji Hong / Art critic
Translated by O Woomi Chung
The night falls on the ridges of mountains. Hundreds of brush strokes carve the valleys that resemble the backbones of a bony beast and erect crests that protrude. Faint light quietly shimmers in every bumpy spot. The sound of a waterfall comes from above. The gush of water becomes a beam of light and unveils darkness. The depth of it is that of one’s heart, and thousands of droplets seep into the boundless abyss.
Hyunho Kim’s landscape paintings have a “psychological context”[i] beyond the solid surface. Underneath the layers of carbon black lies the black and white nature, which forsaking seductive colors gracefully let in. The canvas made silent by emptying attains depth instead of splendor. Countless in-between spaces are then open, depending on the depth and subtle brightness. Each audience follows their heart and the temple of their heart is lit up.
These meditative paintings open up a foreign world and take it in at the same time. The glimpse of it hints not at the self-evident nature, but the one that clandestinely glistens in the breathless darkness. As Heinrich Rombach put it, those who are sensitive to light value the light of morning over that of day and the light of night over that of morning. “Isn’t night more fundamental than day? For light to be light, doesn’t it ultimately have to be radiating from ample darkness? (…) Don’t beings exist by resisting nothingness(Nichts) that precedes everything and by surfacing?”[ii] In Kim’s works, mountains and waterfalls are viewed as “uprising(surrection)” from darkness. It is “resurrection”, and “the sudden appearance of the unavailable, of the other and of the one disappearing in the body itself and as the body.”[iii]
Nature in the paintings induces push and pull. “Touch me not.” Viewers with the eyes of a hermetic(hermetisch) poet do not “understand(verstehen)” but “see(sehen).”[iv] They simply accept this wild darkness and the unknown realm of which the depth cannot be fathomed. This paradox is related to the issue of establishing the sacred distance between the other and I and between nature and man, and it is present “wherever there is withdrawal, distance, distinction, and the incommensurable”.[v] Can we accept these self-evident facts more naturally — that
there is a world that is unidentified, that night cannot not come, that darkness is more fundamental than light? Contrary to what some Western thinkers have stated, the existence of nature does not depend on our perception — nature is wholly present. Whether or not one sees it, it is ‘always there.’ Before the absolute emergence of nature, we remain speechless.
Viewers see a point that lies beyond understanding, but they are not afraid since they are to come across true light in the dark that will slowly blanket their body. Then, “it is not a question here of seeing in the darkness, that is, in spite of it. It is a question of opening ones’ eyes in the darkness.”[vi]
[i] René Huyghe, Ideas and Images in World Art: Dialogue with the Visible, trans. Gwangsu Gwak, Paju: Youlhwadang, 2017, p.117.
[ii] Heinrich Rombach, The Apollonian World and the Hermetic World, trans. Dongjin Jeon, Paju: Seokwangsa, 2001, pp.38-39. (Translator’s note: The quoted text is a translation of the Korean edition.)
[iii] Jean-Luc Nancy, Noli me tangere: On the Raising of the Body, trans. Sarah Clift, Pascale-Anne Brault, and Michael Naas,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08, p.15.
<Hoxy, 당근이세요?>는 특정 플랫폼을 지시하는 것이 아닌, ‘중고거래’라는 사회현상에 대해 주목한다. 다양한 중고거래 플랫폼들은 이미 온라인을 넘어 실제와 가상을 잇는 하나의 커뮤니티로 자리하고 있다. 일반인들끼리의 거래활동은 동시대 현대인들의 생활패턴과도 많이 닮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물건을 비움으로써 여유와 가치를 찾는 미니멀한 삶의 형태, 각각의 사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맥시멀한 삶의 형태를 통찰한다. 이번 전시는 오늘날의 현대인들 그리고 사회가 작동되는 시스템을 단면화하여 들여다보고, 전지적 시점에서의 동시대 고찰을 목표로 한다. ⠀ ■ 전시기간 : 2022.1.07. – 3.31 ■ 전시기획 : 스테어스, 아트만 ■ 참여작가 – 맥시멀 : 권민주, 김자옥, 류은미, 박다현, 설고은, 이지후, 이향희 – 미니멀 : 김시현, 김정우, 김현호, 남정근, 우덕하, 유혜민, 조규빈, 차유나
1) 2020년 예술로 기획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예술인들과 기관, 잠상은 지속적으로 함께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며 교류를 이어왔다. 특히 2년 동안 사업을 함께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혼자서는 진행하기 어려움이 있던 작업들을 협업으로 실현시킨 경험들을 떠올리며 본 사업은 물론 현재 협업이 이루어지는 형태에 대해 자발적인 관심과 필요성을 느꼈다.
2) 2021년의 기획은 앞서 언급한 내용과 같이 잠상 멤버의 예술가로서의 개별적 독립과 성장, 그 과정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시스템적, 사례적 경험이 보다 많은 참여예술인과의 협업으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또한 참여예술인들은 일방적인 멘토 역할이 아닌 각자의 창작활동을 기획하고, 다른 예술인들(잠상 포함)의 개별기획에도 자유롭게 참여하며 본인의 창작을 지속함과 동시에 여러 장르의 교류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관점과 결과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3) 각자의 프로젝트를 기획한 후 공유하고 자신이 참여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선택하여 협업하거나 기술적, 내용적 부분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협업관계를 만들어가며 본 사업에 참여하는 예술가(잠상+참여예술인)들의 개별 창작물로 완성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참여예술인들의 예술 활동을 심화시키고, 잠상의 예술가로서의 독립을 실현한다.
포스터
“위 내용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주최하는 <2021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예술로>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서울 25부작 서초구 프로젝트 ‘아티스트이십오’ 작가로 선정, 영동2교 하부 구조물에 미디어 파사드 작업과 AR 기술을 활용한 가상 전시에 참여하였다.
잆어요는 ‘있지만 없는, 없지만 있는’ 이라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프로젝트 대상지로 선정된 영동2교 하부는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인위적으로 재현된 자연의 영상을 바라보도록 구성하고 물리적 작품이 없는 전시장 좌대를 설치하여 관람을 유도한다. 공간에 들어온 관람객은 프로젝트의 일부가 되고 제3의 관람객은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관람하는 행동에 의문을 갖게 한다.
– 잆어요 홈페이지 발췌
Credit
대표 / 기획 및 총괄: 박진희 프로젝트 감독: 김주호 현장 조감독: 권지영 전시 큐레이터: 김지현 보조 큐레이터: 송소연 그래픽 디자인: 한송이, 박지현, 최빛나 아카이브: 장보람 촬영감독: 권도한 에디터: 이경진, 김한나 행정지원: 안슬기
<응집하는 눈>은 자신의 거주지와 인천을 오고가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발견하는 일상의 것들을 한 전시장 안에 모아놓는 형식의 전시이다. 이번 기획을 시작 하게 된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는 소재의 다양성을 넘어 대상을 응시하는 시각적 다양성과 그로인해 만들어지는 해석적 다양성으로서 사용된다. 영화감독인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이론은 ‘충돌의 편집’으로도 불리는데, 서로 다른 쇼트가 부딪쳐 새로운 관념을 창출하는 행위는 각 이미지들의 상호작용을 유도한다. 이런 몽타주효과의 형태를 차용하여 이번 전시형태의 틀을 구축했다. 언뜻 보아 연결점을 찾기 힘든 작품의 외형과 소재들은 이미 인천의 한 공간이라는 공통적 연결성을 갖고 시작된다. 작가들이 자신의 익숙한 공간과 장소에서부터 특정 공간으로 설정된 ‘인천’까지의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인 시각을 기록한 결과물들을 관람객은 자신만의 역사가 녹여진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작가와 작가, 작품과 작품, 작가와 공간, 작품과 공간의 공통분모나 새로운 상호작용의 연결통로를 관람객 스스로가 찾으며 지리적 공간인 인천에서 각자의 가상적 공간의 영역을 새로이 구축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공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물질과 비물질의 것들 또한 새로이 구축되는 연쇄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각각 도시, 형상, 언어, 그리움, 기원(소망)에 주목하여 자신의 작업을 이어나간다. 또한 작품의 시각적 특징 또한 모두 다른 형태로 드러나는데, 이들의 관찰법과 관찰대상을 연결시켜보면 하나의 세계가 형성된다. 공간을 형성하는 도시의 풍경과 그 속을 채우는 인간, 동물, 식물, 사물, 건축물, 자연적 형상, 사건의 현상들, 그리고 인간의 내면적 요소인 감정과 생각들이 모두 응집되어 있다. 이로서 우리의 일상을 작동시키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다채로움이 전시를 통해 드러날 수 있게 된다.
AppaXArtist: Walk single channel video infinite loop 2018 아빠X아티스트: 걷기
The exhibition initiated by a letter from “Art Space + the necessities of life” where my work had exhibited. The letter asked after me and requested artwork as artworks.
이 전시는 예전에 전시를 했던 예술공간+의식주에서 보내온 편지에서 시작되었다. 편지의 내용은 나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고 작품으로 답장을 요청했다.
the reply to Art Space + the necessities of life
Thank you for the letter. I and my daughter are OK now. It’s been a year we have met. I remember I prepared the exhibition busily since I was just became a father.
As an artist, being a father is tough indeed. 21 months and I barely get used to it but it was really hard time. The hardest part is co-existing artwork and childcare. As you know, even someone who has a stable job handles it hardly in this Korean society. You can imagine that being a father for an artist is like rising two suns in the sky. That maybe why people give up being parents.
In fact, being parent is truly happy. When I see her smiling face exact same way as mine, it fulfills me more than any work I have done. I am anxious, on the other hand, when I think about my career. Making money for nurturing, I feels like I washed up by the tide. I realized happy and unhappy can be co-existed.
In this tight time physically and temporally, I am trying to continue my work doing some drawing with tablet PC on the subway. I send some work with the reply.
Thank you for remembering me. I look forward to seeing you.
Best,
Hyunho
2018.8.29.
installation view (AppaXAritst)
This exhibition is a part of 2018 exchange program “‘Gatchi, Gachi’_Space Adyssey : about what not here now” Seoul Art Space Seogyo
소환 프로젝트는 참여자들의 소중한 대상을 그려주면서 시작된다. 참여자들에게서 건네받은 사진과 어떤 방식으로 함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작가는 그에 맞게 제작하여 준다. 소중한 대상이 그려진 가방, 안경, 신발, 이불, 쿠션을 받은 참가자들은 소중한 대상의 기억을 영상으로 찍어 작가에게 보내준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편집하여 영상작업으로 만든다. 그 영상 안에서 참여자들은 화자가 되어 소중한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환이라는 단어에는 어떤 대상을 지정된 곳에 나타나도록 요구하는
명령적 뉘앙스와 현재에 없는 것을 나타나게 하는 주술적 뉘앙스가 함께 담겨 있다. 그렇기에
작가에게는 닮게 그리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즉, 소중한
대상의 재현이 그 대상의 소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참여자와 상의하여 좀 더 닮게 그리기 위해 여러
차례 수정의 과정을 거쳐 작업을 완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재미있는 점은 순간을 기록하는 객관적 정보로
이용되는 사진이 아닌 참여자들의 기억 속 모습과 닮게 그려야 하는 점과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요구는 소환을 위한 마법사들의 주문처럼 작가에게
주문됐다.
작가의 초기 작업은 평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림이 그려진 바탕의 물성을 이용해 부분적으로 변형을 줌으로서 평면성을 해체하는 시도를 해왔다. 이는 소환 프로젝트에서 안을 수 있고, 업을 수 있는 물성으로 발전되었다. 이로써 초상은 평면의 바라보는 대상이 아닌 껴안을 수 있는 소중한 존재로 대체되고, 참여자들의 기억으로 그들은 현재 시점에서 재현되어 소환되었다.
카메라의 발명 이후, 회화는
재현의 기능을 잃고 회화 자체의 순수성을 추구하여왔다. 기술의 발달로 가상이 현실처럼 느껴지는 오늘날 소환 프로젝트는
재현에 관해서 다시금 우리에게 묻는다.
■ 구주희
(플레이스
막)
The Summoning Spell single channel video 17m 56s 2017 소환의 주문
Sponsor: SFAC(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