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도 그것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Solo Exhibition
《밤에도 그것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Night Holding Space Even at Night
2022. 5. 27. – 6. 19.
INYOUNG GALLERY
Funded by ARKO

“이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2년도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 사업을 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대지를 담은 궤: vision> 182×228cm_캔버스에 아크릴_2022

어둠 안에서 열리는 눈

홍예지 미술비평가

산등성이를 타고 밤이 깔린다. 수백 번의 붓질이 지나간다. 마른 짐승의 등골처럼 움푹 패인 곳이 있는가 하면, 우둘투둘하게 솟아난 곳도 있다. 튀어나온 자리마다 희미한 은빛이 감돈다. 저만치 위로 폭포 소리가 들린다. 솨아아- 떨어지는 물줄기는 빛줄기가 되어 어둠의 베일을 들춘다. 수심(水深)은 마음의 깊이와 같고, 수천 개의 물방울이 측정할 길 없는 심연으로 스며든다.

김현호의 산수(山水)는 견고한 표면 너머로 “심리적인 배면(背面)”[1] 을 간직하고 있다. 겹겹이 도포한 카본 블랙 층 아래에는 오직 흑과 백으로 구성된 자연이 존재한다. 눈을 현혹하는 색들을 미련없이 걷어 내면서 맞아들인 세계다. 비움으로써 고요해진 화면은 화려함 대신 깊이를 얻었다. 그 깊이, 미세한 명암의 차이에 따라 무수한 사이-공간이 열린다. 관객은 저마다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 사원(寺院)에 불이 들어온다.

이 명상적인 그림들은 낯선 세계를 열어 보이면서 동시에 거두어 들인다. 언뜻 나타난 세계는 백일하에 드러난 자연이 아니다. 숨 멎는 암흑 속에서 은밀히 빛나는 자연이다. H. 롬바흐의 말마따나, 빛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낮의 빛보다 아침의 빛을, 아침의 빛보다 밤의 빛을 높이 평가한다. “밤이 낮보다 더 근원적이지 않은가? 빛이 빛일 수 있기 위해서는 결국 보다 광대한 어둠으로부터 빛나 오르는 것이어야만 하지 않는가? (…) 존재는 모든 것에 선행하는 무에 대항하면서 자신을 두드러지게 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2)  김현호의 화폭에서 산과 폭포는 어둠으로부터 “융기”한다. 이는 곧 “부활”이며,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것, 타자인 것, 사라지는 도중에 있는 것이 몸 자체 안에서, 몸으로서 돌출하는 것이다.” 3)

그림 속 자연은 접촉을 유도하면서 밀어낸다. “나를 만지지 마라.” 헤르메스적 시인의 눈을 가진 관객은 “이해(verstehen)”하지 않는다. “그는 본다.”4)  이 무지막지한 어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미지(未知)의 영역을 그저 받아들인다. 이 역설은 타자와 나, 자연과 인간 사이에 신성한 거리를 설정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어떤 물러남, 거리, 변별 그리고 ‘측정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난다.5)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 밤이 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빛보다 어둠이 근원적이라는 것. 이 자명한 사실을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서구의 몇몇 사상가들이 주장했던 것과 달리, 자연의 존재 여부는 나의 인식에 달려 있지 않다. 자연은 온전히 거기에 실재한다. 내가 바라보거나 말거나, ‘언제나 그곳에 있다.’ 자연의 절대적인 출현 앞에서 우리는 말문이 막힌다. 이해를 넘어서는 지점을 목도한다. 그럼에도 두렵지 않다. 우리의 몸을 천천히 감싸는 어둠에서 빛다운 빛과 조우할 수 있기에. 그렇다면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보는 게 문제가 아니다. 더 나아가 어둠에도 불구하고 보는 게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둠 안에서 눈을 여는 것이다.”6) 

[1] 르네 위그, 『보이는 것과의 대화』, 곽광수 옮김, 열화당, 2017, p.117.

[2] H. 롬바흐,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 전동진 옮김, 서광사, 2001, pp.38-39.

[3] 장-뤽 낭시, 『나를 만지지 마라』, 이만형∙정과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 p.33.

[4] H. 롬바흐, op. cit., p.35.

[5] 장-뤽 낭시, op. cit., p.29.

[6] ibid., p.76.

Preface

Kim Hyunho’s Solo Exhibition – Night Holding Space Even at Night

Eyes That Open Up in the Darkness

Yeji Hong / Art critic

Translated by O Woomi Chung

The night falls on the ridges of mountains. Hundreds of brush strokes carve the valleys that resemble the backbones of a bony beast and erect crests that protrude. Faint light quietly shimmers in every bumpy spot. The sound of a waterfall comes from above. The gush of water becomes a beam of light and unveils darkness. The depth of it is that of one’s heart, and thousands of droplets seep into the boundless abyss.

Hyunho Kim’s landscape paintings have a “psychological context”[i] beyond the solid surface. Underneath the layers of carbon black lies the black and white nature, which forsaking seductive colors gracefully let in. The canvas made silent by emptying attains depth instead of splendor. Countless in-between spaces are then open, depending on the depth and subtle brightness. Each audience follows their heart and the temple of their heart is lit up.

These meditative paintings open up a foreign world and take it in at the same time. The glimpse of it hints not at the self-evident nature, but the one that clandestinely glistens in the breathless darkness. As Heinrich Rombach put it, those who are sensitive to light value the light of morning over that of day and the light of night over that of morning. “Isn’t night more fundamental than day? For light to be light, doesn’t it ultimately have to be radiating from ample darkness? (…) Don’t beings exist by resisting nothingness(Nichts) that precedes everything and by surfacing?”[ii] In Kim’s works, mountains and waterfalls are viewed as “uprising(surrection)” from darkness. It is “resurrection”, and “the sudden appearance of the unavailable, of the other and of the one disappearing in the body itself and as the body.”[iii]

Nature in the paintings induces push and pull. “Touch me not.” Viewers with the eyes of a hermetic(hermetisch) poet do not “understand(verstehen)” but “see(sehen).”[iv] They simply accept this wild darkness and the unknown realm of which the depth cannot be fathomed. This paradox is related to the issue of establishing the sacred distance between the other and I and between nature and man, and it is present “wherever there is withdrawal, distance, distinction, and the incommensurable”.[v] Can we accept these self-evident facts more naturally — that

there is a world that is unidentified, that night cannot not come, that darkness is more fundamental than light? Contrary to what some Western thinkers have stated, the existence of nature does not depend on our perception — nature is wholly present. Whether or not one sees it, it is ‘always there.’ Before the absolute emergence of nature, we remain speechless.

Viewers see a point that lies beyond understanding, but they are not afraid since they are to come across true light in the dark that will slowly blanket their body. Then, “it is not a question here of seeing in the darkness, that is, in spite of it. It is a question of opening ones’ eyes in the darkness.”[vi]


[i] René Huyghe, Ideas and Images in World Art: Dialogue with the Visible, trans. Gwangsu Gwak, Paju: Youlhwadang, 2017, p.117.

[ii] Heinrich Rombach, The Apollonian World and the Hermetic World, trans. Dongjin Jeon, Paju: Seokwangsa, 2001, pp.38-39. (Translator’s note: The quoted text is a translation of the Korean edition.)

[iii] Jean-Luc Nancy, Noli me tangere: On the Raising of the Body, trans. Sarah Clift, Pascale-Anne Brault, and Michael Naas,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08, p.15.

[iv] Heinrich Rombach, op. cit., p.35.

[v] Jean-Luc Nancy, op. cit., p. 14.

[vi] ibid., p. 42.

Hoxy… 당근이세요?

포스터

<Hoxy, 당근이세요?>는 특정 플랫폼을 지시하는 것이 아닌, ‘중고거래’라는 사회현상에 대해 주목한다. 다양한 중고거래 플랫폼들은 이미 온라인을 넘어 실제와 가상을 잇는 하나의 커뮤니티로 자리하고 있다. 일반인들끼리의 거래활동은 동시대 현대인들의 생활패턴과도 많이 닮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물건을 비움으로써 여유와 가치를 찾는 미니멀한 삶의 형태, 각각의 사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맥시멀한 삶의 형태를 통찰한다. 이번 전시는 오늘날의 현대인들 그리고 사회가 작동되는 시스템을 단면화하여 들여다보고, 전지적 시점에서의 동시대 고찰을 목표로 한다.

■ 전시기간 : 2022.1.07. – 3.31
■ 전시기획 : 스테어스, 아트만
■ 참여작가
– 맥시멀 : 권민주, 김자옥, 류은미, 박다현, 설고은, 이지후, 이향희
– 미니멀 : 김시현, 김정우, 김현호, 남정근, 우덕하, 유혜민, 조규빈, 차유나

transmission from floating island

transmission from floating island_mixed media_dimensions variable_2021

<floating island>는 인천 문화예술 특화거리 점점점 소속 팀 예인인력에서 진행한 코로나 19에 대항하는 공공미술형태의 게릴라 프로젝트이다. 마티에르를 넣어 그린 섬 그림을 이용해 행인들에게 탁본을 찍어주고 탁본을 세상에 전하고 싶은 단어를 수집하였다. <transmission from the floating island>는 참여자들의 자필 텍스트를 스캔하여 제작한 영상물과 탁본을 이용하여 구상한 설치작업이다.

words from island

점점점 유니버스: 예인물류센터

installation view_floationg island
installation detail
어두운 풍경화#1-8_acrylic on canvas_39.7×45.5cm each_2021
전시 포스터

점점점 유니버스: 예인물류센터

장소: 예인인력소

문화예술특화거리 점점점 산하공간 예인인력소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으로 2021년 진행한 프로젝트를 정리 결과를 보고하였다.

related work: floating island, 어두운 풍경화 / landscapes in the dark

작성일자 카테고리 project

협동작전

1) 2020년 예술로 기획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예술인들과 기관, 잠상은 지속적으로 함께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며 교류를 이어왔다. 특히 2년 동안 사업을 함께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혼자서는 진행하기 어려움이 있던 작업들을 협업으로 실현시킨 경험들을 떠올리며 본 사업은 물론 현재 협업이 이루어지는 형태에 대해 자발적인 관심과 필요성을 느꼈다.

2) 2021년의 기획은 앞서 언급한 내용과 같이 잠상 멤버의 예술가로서의 개별적 독립과 성장, 그 과정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시스템적, 사례적 경험이 보다 많은 참여예술인과의 협업으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또한 참여예술인들은 일방적인 멘토 역할이 아닌 각자의 창작활동을 기획하고, 다른 예술인들(잠상 포함)의 개별기획에도 자유롭게 참여하며 본인의 창작을 지속함과 동시에 여러 장르의 교류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관점과 결과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3) 각자의 프로젝트를 기획한 후 공유하고 자신이 참여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선택하여 협업하거나 기술적, 내용적 부분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협업관계를 만들어가며 본 사업에 참여하는 예술가(잠상+참여예술인)들의 개별 창작물로 완성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참여예술인들의 예술 활동을 심화시키고, 잠상의 예술가로서의 독립을 실현한다.

포스터

“위 내용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주최하는 <2021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예술로>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습니다.”

related work: 그림활판

flaoting island / 부유하는 섬

floating island 프로젝트 진행 이미지_인천아트 플랫폼 거리
정미타 <미묘한 이동: 플로팅아일랜드_김현호> single channel video _5m 27s_2021

“floating island / 부유하는 섬”은 코로나19에 대항하는 예술적 방식의 게릴라 1인 시위이다. 고립 아닌 고립을 하고 있는 현 시점에 그림으로 나눌 수 있는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섬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6개의 각기 다른 섬을 아크릴 물감으로 그렸다. 이를 가지고 인천 중구 일대에 5개소에서 천막을 치고 마티에르가 있는 섬 그림을 행인들에게 순지와 먹으로 탁본을 찍어주고 세상에 전하고 싶은 단어를 수집하였다.

탁본 시연 영상
탁본

related exhibition: 점점점 유니버스